'이건 좀 곤란할지도.'
하쿠바 사구루는 눈 앞에 늘어져있는 접시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고민에 빠져서 앉아있는 곳은 긴자의 한 고급 생선요리점에 딸린 독립된 룸으로, 하쿠바의 학과선배들이 면학에 힘쓰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특별히 큰 돈을 써서 한 턱 낸 자리였다. 하쿠바는 비싸보이는 회가 그득그득 담겨있는 접시들 위로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고있는 학우들을 그저 웃으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하쿠바 자신은 생선요리란 것은 물고기로 만든 음식이란 사실 외에 그 어떤 감정도 가지고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 하쿠바와 한 집에서 살고있는 (하쿠바 자신은 연인이라고 생각하고있는)동거인이 문제다.
그와 동거하면서 하쿠바는 난생처음으로 물고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적어도 한 남자는 죽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감이 민감하기 그지없는 그의 동거인은 미각과 후각까지 남달라서, 하쿠바가 귀가전에 먹었던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맞추는 것도 꽤나 정답율이 높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생각없이 저녁식사로 생선요리를 먹었던 하쿠바는 귀가하자마자 그 메뉴를 알아맞춘 동거인에게 세시간동안 칫솔질을 하던지 아니면 이 주 동안 얼굴도 보지말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았었다. 당시에 그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던 하쿠바는 아무리해도 세시간의 칫솔질은 너무하지 않냐고 항의했지만, 동거인은 그 항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았어, 하쿠바]라고 딱 한마디만 하고는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나가버린 후 정말 이 주 동안 전화 한 통도 걸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지옥과도 같았던 이주일의 시간을 보낸 이후로 하쿠바에게 있어서 생선은 일평생 절대 먹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어떻게든 이 고난을 피해야한다는 생각에 하쿠바는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아무쪼록 빨리 이자리가 끝나길 고대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할 리가. 성적도 집안도 외모조차도 가장 눈에 띄는 소중한 후배가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 못 챌 리 없는 그의 선배들은 [하쿠바군, 이것 좀 먹어보게나]라고 손수 눈 앞에 접시를 가져다주는 배려심마저 보였다. 참으로 사려깊은 선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친절함이 지금의 하쿠바에겐 원망스러웠다. 평소 하쿠바의 성격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것도 없이 "오늘은 좀 곤란해서"라며 바로 일어나버렸을 테지만, 그의 동거인은 하쿠바가 그 훌륭한 집안을 내세운 것이라면 그 어떤일을 하더라도 기뻐하지 않았다. 난 네가 스스로 한 거라면 뭐든 좋으니까,라는 동거인의 말에 하쿠바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저택에서 곧바로 나와 이미 자취생활 중이던 지금의 동거인의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 당당하게 비집고 들어와서는 그 뒤로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쿠바가의 상속자가 아니라 그의 연인이자 동반자가 되고싶다는 그의 말에 동거인은 [변함없이 제멋대로인 녀석]이라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자신의 집에 하쿠바가 사는걸 반대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쿠바가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접게하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취미생활을 계속하고있는 동거인의 안녕에 필요한 능력을 익히기 위해서라면, 하쿠바는 지금 자신에게 생선접시를 내밀어주고있는 선배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하쿠바가의 막대한 재력을 쓰지않고서 그의 동거인을 세계최고의 매지션으로 만들기위해 뒷바라지를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하쿠바는 [그럼 한 점만...]이라고 젓가락을 들며 생각했다. 아아, 오늘밤은 모처럼 그가 자정을 넘기지않고 귀가하는 날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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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대학 하쿠바는 의대, 카이토는 공대인 동거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