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하지않지만 일단 18이상.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바라보던 흑발의 청년은, 반사되어 비치는 유리창을 통해 등 뒤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옅은 갈색머리가 인공의 조명에서 마치 금발처럼 보인다. 이국적인 이목구비에 일본인의 평균을 상회하는 큰 키. 고급수트. 심지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마저 완벽하다ㅡ고,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겠지만.
"오늘일은 끝났나?"
"아아- 약속대로 그건 알아왔겠지?"
자신의 질문에 질문으로 되돌려받은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왼손에 들고있던 서류봉투를 청년에게 던졌다. 보기좋게 낚아챈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꼼꼼히 확인하던 청년은 마음에 들었는지 곧 다시 봉한 후 옆에 놓인 책상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어디서 할꺼야? 여기? 아님 집?"
"......"
코트를 벗으며 침대쪽으로 다가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남자는 입을 열였다.
"....쿠로바군,"
쿠로바라고 불린 청년은 어느새 상의를 다 벗고 침대위에서 부비적대고 있었다. 윤기흐르는 흑발에 군살하나없이 보기좋게 균형잡힌 몸매의 유연한 움직임이 마치 담요에서 장난치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제멋대로지만 잘 어루만져주면 갸릉갸릉 귀여움도 떠는 애완동물. 그러나 이 덩치 큰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은 지금까지 다뤄봤던 그 어떤 종류의 동물이나 인간하고도 달랐다. 세간에서 100% 통하는 금전이나 애정 따위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뭐야? 안할꺼면 빨리 말하고...난 바쁜 몸이라고"
"쿠로바군, 나는 이 관계가"
"하아.....뭔 말을 하고싶은거야, 하쿠바. 내 정체를 간파하고 약점을 쥐고 경찰을 막아주고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대신 내가 너에게 갚아야할껀 이 몸이라고 네입으로 얘기했잖아? 기껏 그 아픈걸 참았더니 이제와서 물리자는건 아니겠지?"
그를 사로잡기위한 그 어떤 수단도 소용없었던 하쿠바의 마지막선택은 지리멸렬했다. 쿠로바카이토의 정체를 세상에 까발림으로써 그의 가족들ㅡ사고사했다는 그의 아버지의 명예까지도 단박에 모욕시킬 수 있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꿈에서라도 상상못했을 유치찬란한 협박과 거래. 사실 하쿠바도 상대로부터의 답을 딱히 기대했다기보단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멍청한 범죄자들이나 쓸 법한 그런 뻔한 수법에 상대는 순순히 반응해주었다.
아픔 어쩌고 운운했지만, 카이토의 뛰어난 두뇌 속에서는 이미 이 관계의 이해도식이 완벽하게 짜여져있었다. 하쿠바의 입에서 먼저 이 웃기지도 않는 육체관계의 계약건이 나오긴 했으나, 실은 카이토 자신이 잃는건 단 하나도 없었다. 남자로서의 정체성? 순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여자가 아니니 임신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을 걱정도 없다. 행위시 잠깐의 고통정도야 있겠지만 지금껏 겪어왔던 일의 위험성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터였다. 게다가 자신이 얻기어려운 경찰내부의 고급정보도 앉아서 얻을 수 있다는 덤까지 붙어있다. 하쿠바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다면 철장신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자신에게 집착하는 평상시의 행동을 고려하면 하쿠바에게 배신당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다. 무엇보다도 맘에 든 것은 이 계약이 성립됨과 동시에, 카이토 자신은 전혀 바뀌는게 없는 데 반해 하쿠바는 모든게 바뀌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의 탐정으로서의 당위성, 정의, 프라이드 그 모든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제자리를 찾지 못할게 틀림없었다. 뭐야, 이쪽이 이득이잖아. 그리고.
".....물린다고 말한 기억은 없다만"
"OK. 그럼 빨리 하자고. 난 다음손님에게 가봐야해"
하쿠바의 보기좋은 눈썹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카이토는 침대옆으로 다가온 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힘있게 끌어당겼다. 빛이 꺼짐과 동시에 타액이 옮겨지는 질척한 소리가 방 안을 메꿨다.
*
자신의 등에 박힌 손톱이 최고로 살갗을 파고든 순간 상대의 몸 깊숙히 정액의 한방울까지 모두 내보내면서, 하쿠바는 축 늘어지는 상대의 몸을 꽉 그러안았다. 결국 오늘의 정사에서도 카이토는 본능에 취해 자아를 잃어가면서도 결코 하쿠바라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하쿠바는 정신을 잃은 카이토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씁쓸히 한쪽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그렇게 내가 싫은건가"
"......"
"난..."
"쿠로바군,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난 어디까지라도 같이 갈..."
카이토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중얼거리던 하쿠바의 몸이 그대로 침대시트에 파묻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수면제의 기운에 완전히 곯아떨어진 하쿠바의 품 안에 안겨있던 인물은 조용히 몸을 틀었다. 지큰거리는 하반신에 남아있던 상대의 성기가 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제는 눈 앞에 있는 단정한 이목구비의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마치 연인을 안은 평범한 보통남자의 행복한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평소의 침착한 성격답지않게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카이토는 상대의 약간 벌려진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눈에 고이는 이 물기는 필시 격한 정사때문일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다음손님 따윈 없어...그렇지만,"
넌 정말 구제불능의 멍청이야. 탐정이 범죄자인 나 따윌 좋아해서 뭘 어쩌려고ㅡ
"그러니까 넌 바깥세상에 남아, 하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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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08